이송희일 필름

 

 

 

 

 

 

 

 

 

 

 

 

 

 

 

 


영화 DB
글작성자
 together 2011-08-29 14:45:30 | 조회 : 2994
제      목  내 꿈은 테니스 선수였다

어릴 적 내 꿈은 테니스 선수가 되는 거였다.

나중에 그 꿈이 물거품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잠시 계급 상승을 위해 주말마다 맛난 포도주를 들이키는 프리스트가 될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말짱 도로묵이 되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산지기였다. 산중턱 뙈기밭에 고구마와 밀을 재배하는 대신 그 앞산을 지켜주었다. 나중에 그 산이 공수부대에 팔려 그곳에 장교 아파트가 들어설 때까지 난 친구들과 나무를 하러 갈 때마다 산지기 손자인 것을 거드름을 피우며 으시대곤 했다.

언젠가 다시 자세하게 말하겠지만, 장교 아파트를 짓기 시작할 무렵 우리 아버지와 삼촌들이 별도 없는 칠흑의 어둠 속을 틈 타 건축용 니기다 소나무를 몰래 베어서 집으로 나르던 새벽에 난 '도둑질'에 관한 묘한 쾌감에 들떠 훔쳐온 소나무들을 예의 바른 회계사처럼 천천히 손가락으로 세고 있었다. 갓 베어낸 소나무에서 나던 진한 송진 냄새가 지금도 선연하다.

어쨌거나 공수부대 장교 아파트가 세워지고 산을 깎아낸 자리에 테니스장이 만들어졌는데, 그 테니스 코트 바로 아래에 우리 고구마 밭이 있었다. 흰색의 짧은 테니스 유니폼을 입은 고운 새댁들이 테니스를 치는 동안, 난 고구마 밭에 북돋구는 일을 하다 말고 그물망 속을 기대감 찬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가끔, 새댁들이 홈런처럼 쳐서 날린 노란 테니스 공들이 우아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우리 고구마 밭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때는 바야흐로 프로 야구가 막 생겨 전국민을 야구의 열풍으로 몰아가던 때였다. 비싼 야구 공 대신, 테니스 공을 가지고 야구를 하던 우리 조무래기들 사이에서 나처럼 테니스 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일종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우리 팀이 지게 생겼으면 '야, 배고프니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자'라든지, 누군가 김재박처럼 재수없이 야구를 잘한다면 '넌 재수 없으니 빠져'라든지.

그러니 자연 고구마 밭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 테니스 공의 위치를 그물망 속의 새댁에게 알려줄 리 없었다. 무성히 자란 고구마 밭은 그녀들에겐 밀림과 다를 바 없었고, 난 행방을 모르겠으니 찾으려면 직접 내려와서 찾아보라는 듯이 거만을 떨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곤 했다. 속으로는 하나 건졌다 쾌재를 부르면서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테니스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귀족들의 스포츠인 것처럼 여겨졌다. 우아한 말씨로 '백핸드, 포핸드' 어쩌고 하는 소리도 쌀라쌀라 남의 나라 말처럼 들리는 판이었으니.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하게 테니스에 관한 영화를 보았다. 찬물에 밥을 말아 김치와 맛있게 먹으면서 테레비를 보고 있었는데, 점점 영화 속으로 빠져 들어 내가 밥을 먹고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그 영화는 흥미진진했다.

윔블던을 몇 번인가 제패했다는 여자 선수의 실화에 관한 영화였다. 그녀는 나처럼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했고, 아버지가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녀는 윔블던을 비롯한 메이저 경기를 석권하며 인간 승리가 무엇인지 몸소 실천하는 대단한 드라마를 펼쳐 보여주었다. 그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비장하게 위로 상승하는 동안 내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눈물이 내리 하강하고 있었다. 맞아, 저거구나 싶었다. 가난을 탈출하는 데는 테니스가 최고구나 싶었다.

그때 내 나이 열 네 살이었다. 금마 체육사 아저씨네 집에 가서 흘깃 본 일자형 테니스 라켓에는 1만 원이라는 딱지가 커다랗게 붙여져 있었다. 언감생신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나무판 테니스 라켓이었다. 일종의 시위용 피켓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무 막대기에다 판자를 대고 못질을 해서 만든, 그 무식하게 무거운 라켓을 들고 우리집 마당을 테니스 경기장으로, 창고 벽을 연습용 벽으로 삼아 그날부터 맹렬히 연습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여동생과 어머니는 저 놈이 뭔짓을 하나 싶어 마루에 나란히 앉아 방향 감각 없이 나무판을 휘두르는 내 모습을 혀끝을 차며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난 가끔 버스를 타고 이리 시의 서점에 들어 테니스 교본을 훔쳐보곤 했는데, 아직까지도 왜 그때 교본을 사지 못했나 후회가 든다. 오른쪽 무릎의 각도는 이렇게, 손목의 각도는 이렇게!

아무튼 그때부터 장교 아파트의 테니스 코트에서 들리는 뻥뻥, 연습 소리는 내 속을 휘젓는 유혹의 소리가 되었다. 가끔 집 근처 밭에서 일을 하다가 숨을 돌리기 위해 허리를 세우고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먼빛으로 바라보면 어머니는 저 놈이 '또 황복골 미친 춘석이 마냥 먼산만 보네'하고 웃곤 했지만, 지금에 와서 속내를 밝힌다면 내가 바라본 곳은 바로 그 테니스 코트였고, 테니스를 배우고 싶은 열망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한달 후쯤에 어머니를 졸라 가까스로 만 원을 받아내 일자형 라켓을 손에 거머쥐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후 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밭에서 일하지 않을 때는 최하위 싸구려 라켓을 들고 테니스장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비가 와서 코트가 고르지 않으면 손수 롤러를 밀어 다듬고 서브 연습을 하곤 했다. 가끔 싸가지 없는 장교 마누라가 '너 민간인 아니니?'하며 경계선이 확실히 나뉘어져 있는 장교 아파트로 진입한 것에 대해 제비 새끼 마냥 지지지배거리며 말도 안 되는 엄포를 놓긴 했지만 대부분의 장교 아내들은 흔쾌히 이 대책없는 새까만 소년 민간인의 연습 상대를 자청하곤 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장교들과 테니스를 칠 수 있었다. 그들 모두는 민간인이 저 파란색 담을 넘어 오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선량한 얼굴로 독학으로 얻어진 엉성한 내 폼을 교정해주곤 했다. 나중에는 많이 친해져 음료수 내기 경기를 하거나 읍내에서 만나도 아는 체를 했다. 아마도 내가 지금껏 살면서 뭔가에 가장 집중했던 것이 중학교 3년 그 기간 동안 테니스에 매달린 때인 것 같다. 반바지만 입고 땡볕에서 연습을 해서 내 상반신과 하반신은 검게 그을렀고, 잘못된 포즈 때문에 발생하는 '테니스 엘보우' 증상에 두 번이나 걸리기도 했다.

그렇게 이 앙물고 테니스 선수에의 꿈을 키워가던 나에게 첫 번째 찬물을 끼얹은 사람은 다름아닌 중3 때의 담임 선생이었다. 그때 난 반장이었다.

"넌 뭐가 될래?"
"테니스 선수요."
"엥?"

그는 교무실로 날 조용히 불러내더니 말도 안 된다는 투의 웃음을 지으며 내게 훈계했다.

"테니스 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들고..... 그리고 니가 키가 될 것 같냐?"

그 본인도 꽤나 테니스를 좋아했던 담임은 테니스의 기본은 '서브'인데, 내 키로는 중량감 있는 서브를 할 수 없다며 내 신체에 대해 실랄하게 원초적인 공격을 가하더니 나중에는 테니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자신의 철학을 게게 풀어놓았다.

하지만 난 그건 당신이 테니스를 정말 몰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마이클 창이나 지미 코너를 봐라. 걔들이 키가 크대? 걔들은 키가 그렇게 크지 않아도 라운드 스토르크로 충분히 정상급 기량을 발휘하고 있지 않냐? 썅........ 난 서브로 승부하는 것보다 이반 랜들처럼 그렇게 하고 싶단 말야!

나중에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어느 날 학교 테니스 코트에서 담임을 사정없이 깔아뭉개 복수해준 일이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안 풀린다. 그가 조금만 더 사려 깊게 제자의 희망을 격려했었더라면 학교에 대한 내 불신이 이처럼 크지는 않았을 게다.

어쨌거나 담임의 만류에도 난 테니스 연습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다. 지금은 시골에 살아서 그런 거지, 도시로 나가면 뭔가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작은 할아버지가 '밥이나 제대로 먹으려면 공고를 가야 한다'며 어머니를 협박했을 때도, 가난한 사정 다 알지만 도시로 나가고 싶어 이틀 동안 단식 농성을 벌이며 정말로 통곡하는 심정으로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보여야 했다.

하지만 합격증을 받아쥐고 전주에 있는 동암고등학교 앞에 버스에서 내렸을 때, 난 내 꿈이 산산조각 나는 걸 느꼈다. 테니스부 정도는 갖추고 있었으리라 믿었던 전주의 1진 고등학교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황량한 벌판에 왠 빨간 건물? 당시는 소위 '뺑뺑이'라 불리는 제비뽑기 방식으로 고등학교를 지정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학교를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윔블던의 푸른 잔디 코트는 그렇게 낯선 빨간 건물 뒷편으로 아스라히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해서 3년 동안의 연습은 물거품이 되었다. 가난을 탈출하려던 내 은밀한 계획은 효자동 벌판의 빨간 건물 앞에서 와르르 좌초되었고, 내 등 뒤에는 3년 동안 시름에 잠겨 보아야 할 모악산이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물론 내가 테니스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는 느낌은 그 이후에 깨닫게 된 것 같다. 주말마다 꼭 시골집에 내려 가서 또다시 라켓을 잡는 내 모습을 보면서, 라켓을 휘두를 때의 쾌감이 어쩌면 전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처음 샀던 그 무식한 일자형 라켓 외에 내 방에는 네 개의 라켓이 더 늘어났고, 난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긴 그건 연습이라기보단 그저 쾌감을 선사하는 즐거운 몸놀림이었다. 지면에서 튀어오르는 공을 가격할 때의 쾌감, 좌우로 빠져 나가는 공을 향해 격렬하게 달릴 때의 희열.

하지만 20살이 되었을 때 테니스를 완전히 그만 두게 된 일이 생겼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스트라이크 죤이 가장 많다는 고래 심줄로 된 질 좋은 라켓을 사들고 테니스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1학년들은 줄지어 세워놓고 포즈를 연습시키는 일만 시켰었다.

난 내가 또다시 포즈 연습하는 이유에 대해 선배들에게 항의했다. 그리고 내가 그들 누구보다 더 나은 실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나와 그들 모두가 깨달았을 때, 그들은 선배가 지켜야 할 권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해고, 난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더욱 아이러니칼하게도 독학으로 배운 다소 일탈된 내 스윙 폼과 그들이 배운 너무도 교과서적인 폼과의 괴리는 전혀 조율될 수 없었다. 내 공을 그들은 받아내지 못했다. 100여 명의 신입 회원들이 줄지어 연습을 하던 운동장을 화가 잔뜩 나서 혼자 휘적휘적 가로질러가던 그때 그 모습이 생각난다.

이후 난 다시 라켓을 잡지 않았다. 줄의 탄력으로, 장롱 위에 라켓들이 비틀어지고 있는데도 다시는 라켓을 들지 않았다. 왜 그랬냐고 한다면 사실 마땅히 할 말이 없다.

그저 어쩌다 지나가는 길에 테니스 코트에서 소리가 나면,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구경하면서 옛꿈에 대해 생각하며 희미하게 웃는 것밖에는. 하얀 라인이 쳐져 있는 정갈한 코트에서 황톳내처럼 풍겨지는 그리움들을 그저 조용히 눅일 수밖에는. 그건 테니스를 치다가 와이자 형 라켓 사이에 공이 끼었는데 정작 공의 행방을 몰라 하늘을 두리번거리는 아주 우연한 경우와 비슷한 경험이다. 아마도 우리 인생은 라켓에 낀 공을 발견하지 못하고 하늘을 두리번거리는 거와 비슷한 건지도 모르겠다.

상대편 선수가 깔깔거리며 라켓에 공이 끼었다는 것을 알려줘야 비로소 공의 행방을 알고 피식 웃는 거 말이다.


200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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